전기차의 주행거리는 길어야 할까요? 내연기관의 대안으로 본다면 주행거리가 길수록 좋습니다. 엔진 달린 자동차와 주행거리가 비슷해야 사용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용도를 따진다면 꼭 길지 않아도 됩니다. 단거리 위주로 달리고, 집과 목적지에 충전 시설이 잘되어 있다면 주행거리가 짧아도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용량이 적은 배터리를 사용하면 차 가격도 낮아지니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죠.
전기차 초창기에는 차종도 적고 주행거리도 길어야 100km대였습니다. 시장의 주류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죠. 지금은 차종도 다양해지고 주행거리도 길게는 500~600km대까지 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행거리 짧은 전기차를 타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용도에 맞게 주행거리를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행거리 짧은 전기차의 존재 이유가 달라진 거죠.
최근에 선보인 기아 레이 EV는 국내에서 흔치 않은 전기 경차입니다. 주행거리는 205km로 요즘 전기차치고는 길지 않지만, 단거리 위주로 지역 내에서 주로 타는 경차의 본질을 고려하면 적절한 제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이 EV는 정말 탈 만한 전기차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전기차 전용 그릴과 새롭게 디자인한 14인치 휠
레이 EV는 지난해 선보인 내연기관 2차 부분 변경 모델에 기반합니다. 전기차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깨끗한 면 가운데 육각형 충전구를 배치한 그릴과 새롭게 디자인한 14인치 알로이 휠이 달라진 부분이죠. 외부 색상은 스모크 블루를 포함한 6종 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2. 시동 버튼을 통합한 칼럼 타입 전자식 변속 레버
실내는 10.25인치 슈퍼비전 클러스터와 시동 버튼을 통합한 칼럼 타입 전자식 변속 레버가 눈에 들어옵니다. 시동 버튼과 변속 레버가 있던 자리에는 조그만 디스플레이가 달린 수평형 공조 스위치와 수납공간을 마련했고요. 실내 색상은 라이트 그레이와 블랙 두 종류로 나뉩니다. 레이 EV에는 모든 좌석을 접는 풀 플랫 기능과 주행하지 않을 때 공조와 오디오 등 전기장치를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차 전용 유틸리티 모드를 적용했습니다. 주행하기 전이나 후에 업무나 휴식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3. 35.2kWh 배터리와 주행거리 205km
레이 EV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리튬인산철(LFP)이고 용량은 35.2kWh입니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복합 205km, 도심 233km입니다.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배터리 전방에 언더커버를 다는 등 공기역학 성능을 개선했다고 하네요. 복합 전비는 14인치 타이어 기준 5.1km/kWh입니다. 150kW급 급속 충전기를 사용하면 배터리 용량을 10%에서 80%까지 채우는 데 40분 거리고, 7kW급 완속 충전기를 사용하면 6시간 만에 배터리 용량을 10%에서 100%까지 충전할 수 있습니다.
4. 내연기관보다 우수한 성능 수치
레이 EV의 최고출력은 64.3kW(87마력)이고 최대토크는 15.0kg·m입니다. 가솔린 모델의 76마력, 9.7kg·m와 비교하면 각각 15%, 55% 정도 커졌습니다. 주행 감각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국내에서는 경차 최초로 오토 홀드와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를 적용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제동감을 구현하고 주차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도심형 EV를 지향하는 만큼 정체 구간이 많은 시내에서 오토 홀드 기능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죠. 전기차에 특화된 회생제동과 EV 전용 저소음 타이어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5. 2,000만 원대 가격
레이 EV의 차종은 4인승 승용, 2인승 밴, 1인승 밴으로 나뉩니다. 전기차의 다양한 활용도를 고려한 구성이죠. 가격은 라이트 트림이 4인승 2,775만 원, 2인승 밴 2,745만 원, 1인승 밴 2,735만 원입니다. 옵션 적용 전 가장 비싼 가격은 4인승 에어 트림으로 2,995만 원입니다. 4인승 승용 모델의 시작 가격을 놓고 보면 EV 2,775만 원, 가솔린 1,390만 원으로 1,385만 원 차이 나죠. 국고보조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 정확한 가격을 알 수는 없지만 지자체 보조금을 포함하면 2,000만 원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600만 원 정도 가격이 높습니다.
기아 레이 EV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1년에 이미 선보인 적이 있죠. 내연기관 모델이 2011년 11월에 나왔는데 한 달 뒤인 12월에 전기차 모델이 선보였습니다. 전기차 보급 초창기인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내연기관 모델과 전기차가 거의 동시에 나오는 파격적인 시도였죠.
시도는 좋았지만 기대만큼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최고출력 68마력, 최대토크 17.0kg·m, 최고시속 130km로 성능은 경차에 맞는 적절한 수준이었지만, 배터리 용량이 16.4kWh로 작은 편이어서 주행거리가 91km에 불과했죠. 가격은 4,500만 원으로 꽤 비쌌습니다. 보조금 없이는 선뜻 사기 힘든 가격이었죠. 여러모로 부족한 점은 있었지만 전기차 시장을 여는 개척자 역할을 했고, 경차 고유의 도심형 모델 개념을 잘 살린 차로 평가 받습니다.
12년 만에 다시 선보인 최신 레이 EV는 여러모로 좋아졌습니다. 출력은 19마력 높아진 87마력이고, 배터리 용량은 16.4kWh에서 35.2kWh로 두 배 이상 커졌습니다. 주행거리도 91km에서 205km로 껑충 뛰었죠. 전기차 시장의 시대 변화를 레이 EV의 세대 변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보다 좋아졌다고 해서 상품성이 우수해졌다고 단정 짓기는 이릅니다. 경차로 보면 적절한 성능일지 모르지만, 전기차의 전반적인 성능 향상 추세를 보면 주행 거리 205km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보조금 적용 후 2,000만 원대 전후 가격도 경차로는 부담이 가는 수준이죠.
레이 EV는 전기차 시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국내 경차 시장에는 없는 전기차이고, 단거리 위주로 달리는 도심형 경차의 본질을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구현했습니다. 전기차 시장만 놓고 본다면 가격대도 저렴한 편이죠. 특히 레이 EV는 1인승과 2인승 밴도 나옵니다. 소형 전기 상용차가 마땅하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 레이 EV가 상용차 역할을 해낼 수도 있습니다. 레이 EV 초기 모델이 전기차 시장을 개척했다면, 신형은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에 대응합니다. 구형이나 신형 모두 국내 전기차 시장에 이정표를 세운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