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한 자동차 형태의 끝판왕은 무엇일까요? 주로 틈새 모델이 후보에 오를 텐데요. 4도어 쿠페나 리프트백 같은 틈새 모델도 요즘에는 주류화되어서 희소한 형태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형태가 보편화된 가운데 아직 희소성을 유지하는 분야가 하나 남아 있긴 합니다. 바로 슈팅 브레이크입니다.
슈팅 브레이크라는 명칭 자체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왜건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 중의 하나로 자동차 회사들이 종종 사용하거든요. 하지만 진정한 슈팅 브레이크 형태로 나오는 차는 거의 없습니다. 슈팅 브레이크는 쿠페의 왜건 버전을 가리킵니다. 운전석 뒤에 넉넉한 공간을 마련해 사냥 장비와 사냥개를 싣는 용도로 타던 마차에서 유래했죠. 쉽게 말해 스포츠 쿠페를 변형해 만든 2도어 왜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마케팅 측면에서 디자인이 날렵한 왜건 또는 4도어 쿠페에 기반한 왜건에 슈팅 브레이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슈팅 브레이크는 활성화된 분야는 아니어서 자동차 역사에서도 해당 모델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주요 모델로는 볼보 1800 ES, 애스턴마틴 DB5 슈팅 브레이크, 릴라이언트 시미터 GTE, 페라리 FF 등이 있죠. 이밖에 코치빌더들이 양산차를 슈팅 브레이크로 개조하거나, 자동차 제조사에서 콘셉트카로 선보이기도 합니다.
지난 5월에 BMW가 공개한 Z4 투어링 쿠페 콘셉트도 슈팅 브레이크입니다. 실제로 판매하는 모델은 아닙니다. 일회성으로 제작한 쇼카죠. 희소성 높은 슈팅 브레이크 모델인 Z4 투어링 쿠페 콘셉트는 어떤 차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Z4 로드스터에 짐 공간을 추가한 독특한 뒷모습
Z4 로드스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서 앞모습은 Z4와 같습니다. 차이는 뒷부분입니다. 짐 공간을 만들어 내느라 소프트톱 대신 루프 패널을 더해 박스형 차체를 완성했죠. 쿼터글라스가 생기고 BMW의 고유한 특징인 호프마이스터 킨크도 표현했습니다. 차 성격에 맞게 해치 도어를 달고, 날렵한 램프와 역동적인 디퓨저로 멋을 부렸습니다. Z4 로드스터의 변형 모델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차 같죠.
2. 슈팅 브레이크의 비례를 잘 드러내는 측면
슈팅 브레이크인 이 차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측면입니다. 로드스터 특유의 긴 보닛과 슈팅 브레이크의 박스형 차체가 어우러진 2박스 스타일이죠. 정통 왜건은 아니면서 해치백도 아닌 독특한 비례가 특이합니다. 슈팅 브레이크이면서 스포츠카의 롱노즈 숏데크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 있죠.
3. 수제작으로 완성한 고급스러운 실내
일회성 모델인 만큼 Z4 투어링 쿠페 콘셉트는 수제작으로 완성했습니다. 실내 곳곳에는 이탈리아 가죽 공방 폴트로나 프라우의 가죽을 덮었습니다. 장인정신을 발휘해 세심하게 다듬은 가죽 표면이 한층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죠. 가죽 색상은 짙고 밝은 두 가지로 나뉘어 실내 위아래를 구분합니다. 윗부분을 운전의 집중력을 높이고 아래쪽은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내려는 의도라고 하네요.
4. 여유로운 짐 공간과 전용 가방 세트
슈팅 브레이크의 핵심은 단연 짐 공간입니다. Z4 투어링 쿠페는 2열이 없고 1열 뒤가 전부 짐 공간입니다. 차체 크기 대비 넓은 공간을 확보했죠. 해치 도어를 열면 가죽으로 마감한 근사한 짐 공간이 나옵니다. 공간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이탈리아 가죽 공방인 스케도니에 의뢰해 이 차에 맞는 가방을 만든 점도 흥미롭습니다. 실내 색상 및 재질과 통일감을 이루는 가방 세트를 대형 2개, 소형 1개, 의류용 1개로 구성했습니다.
5. 328 투어링 쿠페의 현대적 부활
Z4 투어링 쿠페는 갑자기 생겨난 근본 없는 차가 아닙니다. 차체의 비례와 이름은 1940년 밀레 밀리아 내구 레이스에서 우승한 BMW 328 투어링 쿠페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원래 오픈형이던 328에 뚜껑을 덮어 투어링 쿠페를 만들어 냈죠. Z4 로드스터가 투어링 쿠페로 변하는 과정도 과거의 역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Z3 쿠페를 잇는 슈팅 브레이크 계보
실제로 Z4 투어링 쿠페와 비슷한 양산형 모델도 나왔습니다. 1999년에 선보인 Z3 쿠페가 해당 모델이죠. Z3 로드스터에 지붕을 달아 쿠페를 만들었는데, 루프 라인이 경사지게 내려가는 정통 쿠페가 아니라 슈팅 브레이크 스타일로 다듬었습니다. Z4 투어링 쿠페가 Z3 쿠페의 계보를 잇는다고 봐야죠.
7. 02 시리즈에서 따온 ‘투어링’ 이름
그런데 왜 이름에 슈팅 브레이크 대신 투어링을 붙였을까요? 1970년대 초 BMW 02 시리즈에는 2도어 해치백이 있었습니다. 일반 해치백과 달리 2도어 쿠페 모델을 해치백으로 변형한 모델이었죠. 해치백이라고는 하지만 왜건과 해치백의 중간 정도 되는 독특한 형태가 특징입니다. 슈팅 브레이크와 유사성이 크죠. 기본 모델과 구분하기 위해 이 해치백에는 ‘투어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Z4 투어링 쿠페의 이름도 02 시리즈 투어링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희소성을 큰 가치로 여기는 요즘 자동차 시장에서 Z4 투어링 쿠페는 탐낼 만한 모델이 분명합니다. 일회성 콘셉트카에 그친 운명이 안타깝죠. 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은 반응이 좋으면 일회성 모델을 양산하는 깜짝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Z4 투어링 쿠페의 양산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Z4 로드스터 모델이 후속 모델 없이 단종된다는 점입니다. Z4 투어링 쿠페가 양산된다고 해도 한정판으로 소량만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한정판으로 나오고 밑바탕이 된 Z4 로드스터까지 단종되면 희소성은 더 커지겠죠. 일회성 모델로 끝나든 양산이 되든 Z4 투어링 쿠페는 여러모로 가치 있는 모델이 틀림없습니다.